본문 바로가기 주메뉴 바로가기
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Taylor, Albert Wilder (앨버트 테일러)
출생
1875. 미국
별세
1945. 미국
한국활동기간
1897 ~ 1941
묘비번호
A-09

선교사 이야기

앨버트 테일러는 대한제국 시대와 일제강점기에 한국에서 활동한 사업가이자 언론인이다. 특히 3.1독립운동을 세계에 알리는데 기여했으며 한국의 독립을 위해 노력했다. 그는 1875년 미국 네바다 주 실버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조선 정부로부터 평안도 운산금광의 채광 허가를 받은 동양합동광업사의 운영책임자였던 아버지 조지 테일러와 함께 1897년 한국에 온 광업기술자이다. 앨버트는 운산광산에서 생산하는 가장 중요한 두 광물의 채광을 담당한 감독자가 됐다. 1908년 아버지가 사망했으나 앨버트는 한국에 남아 직산광업사에서 기술 및 경영책임자로 일하는 한편 무역회사인 W.W.테일러사를 설립했다.

 

앨버트는 1917년 영국 출신 배우 메리 린레이와 결혼했으며, 미국 통신사인 AP의 특파원으로 일했다. 1919년 2월 28일 앨버트는 일제의 강제 합병에 저항한 한국의 3.1독립운동을 보도했다. 그날은 그의 외아들 부루스 테일러가 세브란스병원에서 태어난 날이었으며, 동시에 독립선언서가 세브란스병원 지하실에서 인쇄된 날이었다. 일제 경찰이 독립선언서를 찾기 위해 병원을 수색했으나 실패했다. 독립선언서가 부루스의 침대보에 숨겨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앨버트는 독립선언서를 찾아 한국에서 벌어진 독립운동 소식을 세계에 알림으로써 언론인으로서의 자신의 책임을 다했다. 또 그는 일제의 제암리학살사건을 보도하는 등 계속해서 한국의 독립운동을 지원했다. 이로인해 앨버트는 6개월 형을 선고 받았고, 일본 강점기 내내 일제의 감시 대상이 되었다. 앨버트가 투옥되어 있는 동안 아내 메리는 그들의 집 ‘딜쿠샤’에 억류되었다.

 

앨버트와 메리는 태평양전쟁 발발 직후 일제에 의해 추방되었다. 그리고 앨버트는 그가 사랑하는 한국으로 돌아와 미 군정청 광업담당관으로 새 일을 시작하기 직전인 1948년 미국 캘리포니아에서 심장마비로 별세했다. 그는 평소 만일 자신이 한국 밖에서 죽으면 자신의 재를 양화진에 있는 아버지 무덤 옆에 묻어 달라고 말했으며 그의 유언대로 아버지 곁에 묻혔다.

top