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 Story
Missionary Story
“한국 최초의 침례교회를 세운 선교사”
충청지역 첫 개신교회 개척
파울링 선교사는 1895년 내한한 한국 최초의 침례교 선교사로서 충청지역 최초의 개신교회를 세웠다. 파울링은 1864년 미국 펜실베이니아 주 엘림스포트(Elimsport)에서 태어나 루이스버그의 버크넬대학교(Bucknell University)를 졸업했다. 그는 10대에 이미 주일학교 설교자가 되었고, 버크넬대학 재학 중에 한 교회의 목사로 청빙 받을 만큼 유능한 설교자였다. 파울링은 1894년 당시 미국 침례교의 저명한 부흥사인 아도니람 고든(A. J. Gordon 1836~1895) 목사에게 목사 안수를 받았다. 그리고 그는 1889년부터 한국에서 독립 선교사로 사역하던 말콤 펜윅(Malcolm C. Fenwick) 선교사가 1894년 클라렌돈교회에서 행한 한국선교에 대한 강연에 감동되어 한국에 선교사로 오게 된 것이다.
파울링 선교사는 고든 목사가 담임하던 클라렌돈침례교회가 설립한 엘라씽기념선교회의 후원으로 가데린(A. Gardeline) 선교사와 함께 1895년 내한했다. 엘라씽기념선교회는 아프리카와 아시아의 오지 선교를 목적으로 1895년 설립되었으며, 첫 파송 이듬해인 1896년에 또다시 스테드만(F. W. Steadman) 선교사 부부와 애클스(Sade Ackles), 엘머(Arma Ellmer) 선교사를 한국으로 파송했다. 이들 역시 강경 부근 부여에서 선교활동을 벌여 엘라씽기념선교회는 충청남도 지역에서만 선교한 셈이다.
파울링 선교사는 내한 직후 서울과 인천에서 전도를 하였으며, 충청도 강경 출신으로 제물포를 오가며 활동하던 상인 지병석을 전도하여 서울에서 한국 최초의 침례를 거행했다. 파울링 선교사는 충청남도 강경을 선교지로 정했다. 파울링 선교사가 충청남도 강경을 선교지로 택한 이유는 첫 신자인 지병석의 고향이기도 하거니와 엘라씽기념선교회가 오지선교를 목적으로 파송한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을 것이다.
파울링 선교사는 1896년 2월 9일, 강경군 북옥리 지병석의 자택에서 아내와 가데린 선교사, 지병석 씨와 부인 천성녀 등 5명이 참석한 가운데 첫 예배를 드렸는데, 이것이 한국 침례교회 최초의 신앙공동체이자 충청남도 최초의 개신교회가 된다.
한국 침례교의 모교회가 된 강경교회
그러나 파울링 선교사의 한국에서의 사역은 채 5년을 넘기지 못하고 1899년경 끝났다. 규모가 매우 작은 군소 선교회의 후원으로, 당시 가장 궁벽한 오지였던 강경에서의 선교활동은 너무 힘들었을 것이다. 더군다나 파울링 선교사 부부는 내한 직후 태어난 아들 고든(Gordon 1895-1899)이 1899년 1월 사망하여 양화진에 묻어야 하는 아픔을 겪었다. 게다가 이들을 파송한 후 엘라씽기념선교회의 설립자였던 고든 목사가 사망함으로써 후원 역시 원활하지 못했다. 파울링 선교사는 귀국 후에도 전도자의 삶을 살았으며, 1960년 별세했다.
파울링 선교사가 개척한 강경교회는 이후 스테드만 선교사에 의해 유지되다가 1901년 엘라씽기념선교회의 후원이 끝난 후 원산에서 선교활동을 벌이던 말콤 펜윅 선교사에게 이양되었다. 이후 펜윅 선교사가 한국 침례교의 전신인 대한기독교회를 강경에서 창립하였고, 강경교회는 한국 침례교의 모태교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