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 Story
Missionary Story
“YMCA를 통해 청년들에게 복음과 비전을!”
조국을 잃은 청년들에게 새로운 비전을
브로크만은 조국을 잃고 실의에 빠진 한국의 청년들에게 YMCA를 통해 새로운 비전을 제시해 준 인물이다. 한국에 처음 YMCA를 세운 가장 큰 목적 중의 하나는 상류층 지식인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것이었다. 당시 한국의 초대교회는 주로 못 배우고 가난한 소외계층들이 구성원들이었기 때문에 선교사들이 상류층의 청년들과 접촉할 수 있는 기회가 거의 없었기 때문이다.
YMCA 운동의 개척자
브로크만은 1905년 한국 YMCA 협동총무로 파견되어 내한한 이후 1927년까지 YMCA를 위해 헌신했다. 그는 한국 YMCA 운동의 개척자로서, 학생회 간사였던 이승만과 함께 전국 각지를 돌며 수많은 학교에 YMCA 학생회를 조직하였으며, 전국 규모의 '하령회'(여름수련회)를 여는 데 크게 기여하였다. 한일강제병합 이후에 이루어진 '하령회'는 특히 성황을 이루었는데, 조국을 잃은 많은 학생들이 기독교를 받아들이며 항일과 애국을 새롭게 다짐하였다.
일제는 YMCA와 기독교세력을 민족운동의 온상으로 보고, 이를 와해시키기 위해서 이른바 ‘105인 사건’을 조작하였다. 이러한 위기 속에서도 브로크만은 이상재를 도와 YMCA가 일제 강점 후 유일한 전국적 규모의 민간단체로 성장할 수 있도록 만들었다.
1923년에는 신흥우 총무와 함께 농촌 운동을 시작했으며, 국제 YMCA 본부로부터 농촌 기술자의 한국 파견과 자금 지원을 확보하는 등 우리나라 농촌 운동의 새 장을 열었다. 과로로 인해 건강이 악화되어 1927년 미국 으로 돌아갔으며, 2년 후 세상을 떠났다.
그의 유해는 유언에 따라 영화진으로 돌아왔고, 현재 양화진에는 1915년 별세한 그의 어머니와 여덟 살에 죽은 그의 딸과 함께 3대가 안식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