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 Story
Missionary Story
“성공회 신학 발전과 사제 양성에 헌신한 교육 선교사”
1960년대 한국 성공회 재건을 위해 내한
구드윈 선교사는 한국에서 신학생을 가르친 성공회의 대표적인 교육 선교사다. 구드윈 선교사는 1913년 미국 코네티컷 주 하트포드(Hartford)의 명문가문에서 태어났다. 그는 1935년 예일대학교(Yale University)를 졸업한 후 영국 옥스퍼드대학교(Oxford University)에서 공부했다. 그는 학자로서의 전도가 유망한 사람이었지만, 성직자의 길을 걷기로 결단하고 1936년 매사추세츠 주 케임브리지의 성공회 소속 신학원인 성바울대학(Saint Paul College)을 거쳐 성공회 사제가 되었다. 이후 약 15년간 그는 미국에서 성공회 사제로서 목회에 전념했다. 그는 1960년 미국 예일대학에서 신약학 박사학위를 받았다.
구드윈은 박사학위를 취득한 직후인 1960년 9월, 성공회 선교사로 내한했다. 당시 그는 미국 성공회 사제로서, 또 고전어 전문가로서 이미 확보된 편한 길을 마다하고 전쟁의 폐허에서 신음하던 한국에서 선교사의 길을 가기 위해 내한한 것이다. 당시 대한성공회는 한국인 사제를 육성을 담당할 교육전문가 사제가 필요했는데 한국에 아무 연고가 없었던 구드윈 선교사가 교회의 요청에 순종하여 한국에 왔던 것이다. 구드윈 선교사는 한국에서 18년 동안 성미가엘신학원(현 성공회대학교)과 연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다. 그는 특히 성서신학과 고전철학의 권위자로서 성공회 신학 발전과 한국인 사제 육성에 크게 기여했다.
고아를 돌보며 사랑과 희생의 삶
1978년 7월, 정년을 맞아 선교사와 교수직에서 은퇴한 후 미국에 돌아갔던 구드윈 선교사는 두 달 만에 다시 한국으로 돌아왔다. 그는 대학에서 강의하는 한편, 자신을 원하는 곳은 어디든지 마다하지 않고 찾아갔다. 1982년에는 거처를 부산으로 옮겨 성공회 부산교구의 발전에 헌신하면서, 작은 교회를 돕는 일에 앞장섰다. 이어 1994녀누터 구드윈 선교사는 성공회대학교 명예교수에 위촉되어 라틴어와 희랍어 등 고전어를 가르쳤다.
구드윈 선교사는 1997년 6월, 84세를 일기로 별세했다. 평생을 독신으로 지낸 구드윈 선교사는 학자로서뿐 아니라 성직자로서도 사랑과 희생의 삶을 살았다. 100여명의 고아들을 보살폈고, 어려움에 처한 이들을 사랑으로 감싸주었다. 구드윈 선교사는 7월 4일 성공회 서울주교좌성당에서 영결미사를 드린 후 양화진에 안장됐다. 묘비에는 ‘Devoted Father of the Homeless Children(집 없는 아이들의 아버지로 헌신했다)’고 영어로 기록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