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ssionary Story
Missionary Story
세르게이 치르키네는 니콜라스 황제 시절 제정 러시아의 외교관으로 우리나라와 인연을 맺은 이래 두 차례에 걸쳐 약 30년 동안 서울에서 살았다. 치르키네는 1900년 초, 20세 청년 외교관으로 조선에 들어왔다가 약 4년 만인 1904년 2월 러시아 외교진이 철수할 때 조선을 떠났다. 당시 조선 주재 러시아 공사는 파블로프 대리공사였다. 러시아는 러일전쟁에서 일본에 패한 뒤 외교업무를 프랑스 공사관에 위탁하고 조선에서 철수했다. 이후 치르키네는 부카라(현 우즈베키스탄), 타시켄트 등에서 외교관 생활을 계속했으며, 러시아가 망한 후에는 인도에서 살았다.
인도에서 새로운 길을 모색하던 치르키네는 러시아 외교관 시절 서울에서 알게 된 친구로부터 일제에 강점된 한반도에 살고 있는 러시아인들을 위해 일할 사람이 필요하다는 소식을 듣고 1918년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당시 한반도에는 소련 공산혁명을 피해 이주해 온 러시아인들이 상당수 있었는데 대부분 어려운 상황에서 살고 있었다. 치르키네는 이들을 보호하는 일에 헌신하면서, 서울외국인학교에서 영어와 프랑스어를 가르쳤고, 조선은행과 조선호텔에서 영어 관련 업무를 담당했다. 치르키네는 1943년 서울에서 사망해 양화진에 안장됐다.
치르키네에게는 서울에서 태어나 중국에서 공부한 두 아들이 있었는데 이들은 1947년 해방된 한국으로 돌아왔으며, 한국전쟁이 일어나자 그때까지 한국에 살고 있던 러시아 교민들을 공산주의자들을 피해 미국으로 이주시키는 일에 기여했다. 2011년부터 매년 2월, 양화진의 치르키네 묘 앞에서는 러시아 대사관과 한국정교회가 주관하는 추모미사가 열리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