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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James Scarth Gale(게일)
출생
1863. 2. 캐나다
별세
1937. 1. 영국
한국활동기간
1888 ~ 1927
국적
캐나다
소속교단
장로교

선교사 이야기

“한국 문화를 가장 잘 이해하고 사랑한 선교사”



문서선교와 성경번역에 헌신


게일 선교사는 1863년 2월 캐나다 온타리오 주 알마(Alma)에서 출생했다. 그의 아버지는 스코틀랜드 장로교 출신으로 지역 교회 설립에 적극 동참하고 장로로 활동한 독실한 신자였고, 어머니는 칼빈주의 전통이 강한 네덜란드계였다.

게일은 토론토대학에 재학 중이던 1886년 매사추세츠 주 마운트 헐몬(Mount Hermon)에서 열린 미국 YMCA 사령회에서 무디 선교사의 설교에 감동되어 선교사의 소망을 갖게 되었다. 그리고 1888년 2월 토론토대학 YMCA로부터 조선 선교사 후원 약속을 받았으며, 대학 졸업 6개월 뒤인 12월 15일 평신도 선교사로 조선에 들어왔다.

게일 선교사는 내한 초기에 전국을 순회하는 선교여행을 다녀왔는데 이 여행 중 황해도 소래에서 평생의 선교동반자가 된 이창직을 만났다. 게일은 이창직에게 한글을 배웠으며, 이후 게일 선교사의 모든 일에는 이창직이 함께 했다.

게일 선교사는 1890년부터 성성번역위원회 상임위원이 되어 성경번역작업에 동참했고, 1891년 소속을 미국 북장로교 해외선교부로 옮겨 언더우드가 설립한 예수교학당(경신학교 전신)에서 교사로 일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1892년 6월 헤론 선교사의 아내였던 해티(Hattie G. Heron 1860~1908)와 결혼했다.

게일 선교사는 결혼 직후인 1892년 북장로교 원산선교부를 개설하고 이후 6년 동안 원산에서 머물며 선교사역과 함께 성경번역에 힘썼으며, <사과지남>, <천로역정> 등 기독교 서적을 번역하고, 사전(<한영자전>)을 저술했다.

 

연동교회에서 27년간 사역하며 교회의 기틀 다져


게일 선교사는 첫 안식년 기간이었던 1897년 미국 인디애나 주 뉴앨버니노회에서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돌아왔다. 마침 원산 지역이 선교지역 선교를 캐나다선교회가 맡게 되어 게일 선교사는 서울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게일 선교사는 1900년 9월부터 연못골교회(현 연동교회)의 초대 담임목사로 부임하여 1927년까지 재직하며 교회의 초석을 다졌다. 연동교회 담임목사 재임하면서 경신학교, 정신여학교, 피어선성경학교, 연희전문학교, 평양신학교 등에서 교육활동에도 동참했다. 또한 독립협회 사건으로 투옥된 이상재, 이숭만, 이원긍 등 민족지도자들을 감옥으로 심방하여 신앙과 용기를 북돋아주어 출옥 후 연동교회 교인이 되게 했다.

게일 선교사가 한국교회에 끼친 가장 큰 공헌 중 하나는 성경번역에 헌신한 점이다. 그는 1890년부터 1923년까지 33년 동안 성경번역위원으로 활동했다. 번역위원을 그만 둔 후에도 홀로 성경번역에 힘써 1925년에 개인역으로 신구약전서를 출간했다.

 

세계에 한국 문화를 알린 공로자


또한 게일 선교사는 저술을 통해 한국문화를 세계에 알리고, 서양문화를 한국에 소개했다. 그는 한국문화에 대해 누구보다 깊은 이해를 바탕으로 <코리언 스케치(Korean Sketch> <선구자(The Vanguard)> <전환기의 조선(Korea in Trasition)> 등 영문저서 9권, 한국어 저서 30권을 출간했으며, 이외에도 수많은 글을 국내외 언론과 잡지에 실어 한국을 세계에 알렸다.

게일 선교사는 1927년 5월 연동교회를 사임하고 ‘언제까지나 내 마음은 한국에 있다’고 말하며, 아내의 고향인 영국으로 돌아갔다. 그는 영국 바스(Bath)에서 여생을 보냈으며 1937년 1월 31일 별세했다. 그의 무덤은 영국 바스의 랜즈다운(Lansdown) 묘지에 있다.

양화진에는 1908년 사별한 그의 첫 아내 해티 헤론 선교사, 둘째 아내 루이스 세일 아다(Louis Sale Ada)과의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 비비안(Vivian Scarth 1916~1917)이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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