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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Clark, Charles Allen (클라크)
출생
1878. 5. 미국
별세
1961. 미국
한국활동기간
1902 ~ 1941
국적
미국
소속교단
장로교
묘비번호
B-22/23

선교사 이야기

“한국교회 초기의 부흥과 성장에 기여한 선교사”



한국 교회 초기 신학 형성에 기여


클라크 선교사는 한국 기독교 초기 신학 형성에 큰 공적을 남겼다. 그는 1878년 5월, 미국에서 태어나 매코믹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했다. 1902년 마블(Mabel Craft)과 결혼하고 곧이어 목사 안수를 받은 후 그해 9월 말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왔다. 이후 1941년 일제의 강압에 의해 추방될 때까지 40년 동안 선교사로 일했다.

클라크 선교사는 1906년부터 1924년까지 서울 승동교회의 담임목사로 사역하는 한편, 경기 강원 지역을 순회하며 선교활동을 펼쳤다. 또 1908년부터 평양신학교 교수로서 10여 년 동안 서울과 평양을 오가며 선교사역을 감당했다. 1924년에는 평양으로 거처를 옮겨 신학교수의 역할과 평안도 지역 50여개 교회에서 목회자로 선교에 주력했다.

클라크 선교사는 우리나라 최초의 신학교인 평양신학교에서 20여 년 동안 교수로 재임하며 신학 형성과 많은 목회자 양성에 기여했다. 1939년에는 평양신학교 교장서리를 맡아 일제의 신사참배 강요에 저항하다가 폐교 당하는 어려움도 겪었다. 클라크 선교사는 뛰어난 저술가였다. 1918년부터 1940년까지 <신학지남>의 발행인과 편집인을 역임했고, 50여권의 신학서적을 저술했다.

클라크 선교사는 1941년 7월,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다. 1945년 우리나라가 해방된 후 다시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하고자 했으나 나이와 건강 때문에 그의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1961년 그가 미국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을 때, 동료 선교사들은 그를 다음과 같이 추모했다 : "한국에서 그리스도의 사역을 위하여 클라크 박사만큼 매우 풍부하고 매우 다양한 공헌을 성취하는 특권을 누린 사람은 없다.(Few men have been privileged to make so rich and varied a contribution to the work of Christ in Korea as Dr. Clark.)" 이처럼 그는 선교사, 목회자, 신학자, 성경주석가, 저술가로 다양한 활동을 펼치며 초기 한국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기여했다.

 

한국 교회 초기 신학 형성에 기여


클라크 선교사 4명의 자녀 중 셋째 아들 Allen D. Clark(곽안전)은 1933년 아버지의 대를 이어 미국 북장로교 선교사로 우리나라를 찾았다. 그는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될 때까지 선교사로 사역했고, 다시 1953년부터 1978년까지 선교사로 헌신하는 등 모두 35년 동안 선교사로 일했다. 외동딸인 Katherine(곽가전)도 1947년부터 1967년까지 21년 동안 안동과 대구에서 교육선교사로 일했다.

양화진에는 우리나라에서 태어나 어렸을 때 질병으로 사망한 두 아들, 장남 Clark, Burton W.(1903~1904)와 차남 Clark, Gordon N.(1905~1905)이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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