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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Genso, John Frederick(겐소)
출생
1884. 미국
별세
1951. 일본
한국활동기간
1908 ~ 1951
국적
미국
소속교단
장로교

선교사 이야기

“세 가족이 양화진에 묻히다”



존 겐소 – 광복 후 한국교회 재건 위해 헌신


존 프레드릭 겐소는 1884년 미국 메릴랜드 주 볼티모어(Baltimore)의 독일 이민가정에서 태어났다. 이후 그의 성장과정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없다. 겐소 선교사는 1908년 미국 북장로교의 평신도 선교사로 내한하여 북장로교 선교부의 회계 담당자로서 재정을 총괄했다. 그러나 에비슨 선교사에 의하면, 처음에는 세브란스병원에서 에비슨 선교사를 도와 약제사로 일했다는 기록도 있다. 비슷한 시기에 내한한 마벨 선교사와 1910년 결혼하여 부부 선교사가 되었다.

겐소 선교사는 비록 평신도 선교사였지만, 내한 직후부터 경기도 지역 교회를 도와주는 역할도 감당했으며, 1910년대에는 노회 임원으로 활동하기도 했다. 이후에 그는 세브란스의학전문학교의 재단 임원으로 활동했고, YMCA가 발행한 선교잡지 <신생명(The New Life)>의 발행인으로도 활동했다.

겐소 선교사 부부는 1941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되었다가 1946년 해방 후 다시 내한하여 한국교회 재건과 복구를 위해 헌신했다. 겐소 선교사는 심장이 약하여 평생 고생하였지만, 정년에 이를 때까지 행정 및 회계 전문가로서 선교사역에 헌신했고, 두드러진 성과를 거두었다. 겐소 선교사는 한국전쟁으로 잠시 피난해 있던 일본에서 1951년 별세했으며, 아들이 먼저 묻힌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마벨 겐소 – 정신여학교에서 두 차례 교장 연임


아내 마벨 겐소 선교사는 1883년 미국 아이오와 주 디모인(Des Moin)에서 태어났다. 마벨은 고향에서 사범학교를 졸업하고 중등학교 교사로 일하는 한편 주일학교 교사로 봉사하면서 무디성경학교에 다닐 정도로 선교 열정이 넘쳤다. 결국 그녀는 미국 북장로교의 선교사로 임명되어 1908년 내한했으며, 정신여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쳤다. 마벨 선교사는 자신보다 약 열흘 전에 한국에 온 겐소 선교사와 결혼하여 1남2녀를 두었다.

마벨 선교사는 정신여학교에서 1910년과 1920년, 두 번에 걸쳐 교장으로 봉사했고, 피어선 성경학교에서도 학생들을 가르쳤다. 마벨 선교사는 한국에서 여성들과 함께 아동복지를 위해 헌신했으며, 1923년에는 안동교회에 유치원을 설립하여 초대 원장을 지냈다.

마벨 겐소 선교사는 남편이 사망한 후 귀국했다가 1954년 세 번째로 내한하여 프랭크 라우박(Frank Laubach) 박사가 주창한 문맹퇴치운동에 헌신했다. 그녀는 여성들을 가르치는 일에 열정적으로 헌신한 후 1956년 말 귀국했다. 마벨 선교사는 귀국 이듬해인 1957년 미국에서 별세하여 그녀의 유언대로 양화진 남편과 아들 곁에 묻혔다. 양화진에는 남편과 아들 등 모두 세 명이 함께 묻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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