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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Lewis, Ella A.(루이스)
출생
1863. 미국
별세
1927. 한국
한국활동기간
1890 ~ 1927
국적
미국
소속교단
감리교
묘비번호
C-24

선교사 이야기

“복음 선교에 헌신한 간호 선교사”



로제타 홀 선교사를 따라 한국에 온 간호 선교사


루이스 선교사는 간호 선교사로 내한하였으나 후기에는 복음전도자로 헌신했다. 루이스 선교사의 출생과 성장에 대해서는 알려진 것이 거의 없으나 선교사로 한국에 오기 전 의사 로제타 셔우드가 일했던 미국 뉴욕 루즈벨트진료소(Roosevelt Dispensary of New York City)에서 일했다는 기록이 있다.


루이스 선교사는 함께 일했던 의사 로제타가 한국 선교사로 파송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자신도 한국 선교사를 자원하여 1892년 1월 미국 감리교의 간호선교사로 내한했다. 그녀는 한국 최초의 여성 전문 병원으로 세워진 보구여관의 1대 관장 하워드 선교사가 건강 악화로 귀국하고 그 뒤를 이어 보구여관을 책임진 로제타 홀의 의료사역을 도울 간호 선교사로 한국에 온 것이다. 내한 이후 루이스 선교사는 로제타 홀 선교사가 주관하고 있던 보구여관, 볼드윈진료소, 동대문병원 등에서 약 8년 동안 간호 선교사로 헌신했다.


1900년대 초, 제중원의 경영권이 에비슨 선교사를 비롯한 장로교 선교부로 이관되면서 병원 내에서도 선교활동을 공개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이때 상당수의 의료 선교사들이 의료 선교보다 복음 선교활동에 전념하기 시작했다. 윌리엄 스크랜튼, 하디, 오웬, 해리슨 선교사는 의사로서의 활동보다 복음 전도자로 더욱 활발히 활동하기 시작했고, 간호 선교사로서는 루이스 선교사가 간호사 직을 그만두고 복음 전도자로 활동했다.


루이스 선교사는 1899년부터 간호선교사역을 그만두고 스크랜튼 선교사가 개척한 동대문교회와 아펜젤러 선교사가 세운 종로교회(현 중앙교회)에서 복음 전도자로 헌신했다. 그러나 1904년 서울에 성홍열이 창궐했을 때에는 간호사로서의 역할도 감당했다. 루이스 선교사는 일제강점기 여성운동의 요람이었던 종로교회에서 하루도 쉬지 않고 날마다 부인들을 심방하고 각종 여성모임을 인도했다고 한다.

 

말년에는 교단을 떠나 독립선교사로 활동


루이스 선교사는 1905년 이후 감리교를 떠나 독립선교사로 활동했다는 기록도 있다. 루이스 선교사는 1927년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양화진에 안장됐다.(1929년에 별세했다는 기록이 있으나, 묘비에는 1927년 9월 14일 별세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결혼도 하지 않고 36년 동안 한국을 위해 헌신한 루이스 선교사 묘에는 ‘遠涉大洋 初到朝鮮 廣傳福音 多救靈魂(멀리 대양을 건너 처음 조선에 와 널리 복음을 전하여 많은 영혼을 구원하였다)’라는 비문이 쓰여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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