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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Eugene Bell(벨)
출생
1868. 4. 미국
별세
1925. 9. 한국
한국활동기간
1895 ~ 1925
국적
미국
소속교단
장로교
묘비번호
A-49

선교사 이야기

“전라도 지역 복음화의 초석에 기여한 선교사”



호남 지역 선교의 개척자

 

유진 벨 선교사 가족은 전라도 지역 복음화의 초석을 놓았다. 유진 벨 선교사와 로테 벨 선교사 부부는 1895년 4월9일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로 우리나라에 들어왔다. 이들은 1892년 파견된 7인의 선교사에 이어 두 번째로 우리나라를 찾은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였다. 벨 선교사 부부는 조선에 온 첫해에 을미사변을 겪었는데, 당시 벨 선교사는 우리말과 글을 배우는 한편, 고종의 침실에서 불침번을 서고 콜레라가 창궐할 때에는 제중원의 치료활동에도 동참했다.

벨 선교사 부부는 1897년 3월부터 전라남도 나주에서 첫 선교사역을 시작했으나 지역 유림의 강력한 박해로 어려움을 겪었다. 이듬해인 1898년 3월부터는 새로 개항한 목포에서 선교를 다시 시작하여 그해 5월15일, 목포 최초의 개신교 교회인 양동교회를 설립했다.

 

목포 선교사역이 점차 열매를 맺어가던 1901년, 아내 로테 벨 선교사가 별세했다. 어린 자녀들을 위해 미국으로 돌아갔던 유진 벨 선교사는 아내가 묻혀 있는 이 땅을 가슴에 품기 위해 1903년 다시 돌아와 헌신적으로 선교사역을 펼쳤다. 그는 목포, 광주를 중심으로 전라남도 지역에서 교육 및 의료 중심의 선교사역을 펼쳐, 오늘의 목포 영흥학교, 광주기독병원과 수피아여고, 숭일학교 등의 설립에 기여했다. 또 광주 제일교회, 양림동교회 등 10여개의 교회를 개척하는 등 전라도 지역에 기독교 선교의 초석을 놓았다. 유진 벨 선교사는 재혼한 아내 마가렛 선교사마저 1919년 교통사고로 잃는 아픔을 겪었으나 끝내 한국 선교의 꿈을 놓지 않았다. 그는 마지막까지 충성을 다하고 1925년 광주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자녀들도 한국에서 선교사로 헌신

 

벨 선교사 부부의 선교사역은 후손들이 계승했다. 벨 선교사 부부의 큰딸인 샬롯 벨은 1922년부터 군산에서 선교사역을 담당하고 있던 윌리엄 린튼 선교사와 결혼한 후 일제에 의해 강제 추방된 1940년까지 부부 선교사로 일했다. 이들은 해방 이후 한국을 다시 찾아 1956년 대전 한남대를 설립하는 등 한국 사랑과 선교의 사명을 감당했다.

또 샬롯 벨과 린튼의 두 아들, 휴(Hugh)와 드와이트(Dwight)도 한국에서 선교사로 사역했다. 특히 벨 선교사 부부의 한국 선교 100주년이 되는 1995년에는 이를 기념하기 위해 4대손들이 중심이 되어 ‘유진벨재단’을 만들어 북한 지역 의료 및 식량지원 활동을 펼치고 있다.

양화진에는 유진 벨 선교사의 아내인 로테 벨 선교사가 잠들어 있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숨진 최초의 미국 남장로교 선교사이다. 유진 벨 선교사는 광주 양림동 선교사 묘역에 아내 마가렛 선교사와 함께 잠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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