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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교사 처음 이야기

Missionary Story

선교사 소개

Bunker, Dalzell A. (벙커)
출생
1853. 8. 미국
별세
1932. 11. 미국
한국활동기간
1886 ~ 1932
국적
미국
소속교단
감리교
묘비번호
A-22
선교사 동영상

선교사 이야기

“배재학당을 통해 교육과 선교에 헌신”



배재학당 3대 교장, 달젤 벙커


뉴욕 유니온 신학교의 졸업반이던 벙커는, 최초의 근대식 교육기관인 육영공원의 교사로 1886년 한국에 들어왔다. 육영공원이 양반자제들의 학업 태만과 재정지원의 중단으로 문을 닫자 벙커는 아펜젤러가 세운 배재학당으로 옮겨 갔다.

그는 배재에서 종래의 암기 위주의 주입식 교육방법 대신 토론 위주의 공개적인 방법을 도입하였고, 물리학, 화학, 수학, 정치학 등 새로운 교과도 채택하였다. 또한 아펜젤러가 순직한 후에는 배재학당의 3대 교장으로 일하기도 하였다. 한편 벙커는 한국에 들어온 이듬해 민비의 주치의였던 의료선교사 애니 엘러스와 결혼하였다.

 

감옥에서 일어난 전도의 불꽃


당시 배재의 학생들은 독립협회의 서재필, 윤치호의 강연을 통해서 서구의 정치사상과 민족의식에 눈뜰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독립협회가 강제로 해산당하고 중심인물들이 수감되는 사건이 일어났다. 그리고 이때 벙커가 아끼던 제자 이승만도 함께 한성감옥에 투옥되었다.

벙커는 동료 선교사들과 힘을 모아서 한성감옥 수감자들의 처우 개선을 요구하였고, 결국 그 요구가 받아들여져 선교사들이 수시로 감옥을 방문하여 이들을 위로하고 전도도 할 수 있게 되었다. 이 일로 인해 이상재, 이승만, 이원긍, 안국선 등 여러 명의 양반들이 기독교를 수용하게 되었다.

 

한국 땅에 묻히다


벙커는 1912년 배재학당장을 사임한 후 ~ 교육 사업을 하다가 1932년 79세를 일기로 미국에서 별세하였지만 '나의 유골이나마 한국 땅에 묻어달라'는 유언에 따라 그의 아내 애니 엘러스에 의해 양화진에 안장되었다. 애니 엘러스 선교사는 1886년 내한하여 1887년 벙커 선교사와 결혼하였고, 그해 정동여학당(현 정신여중고)을 설립하여 2년 동안 초대교장으로 헌신했다. 남편 벙커가 배재학당으로 옮김에 따라 함께 미감리회로 소속을 옮겼으며, 한국YWCA 창설에도 기여하였다. 1932년 별세한 남편의 유골을 양화진에 손수 묻었고, 그로부터 6년뒤에는 애니 엘러스 역시 남편 무덤에 함께 묻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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